
Kim Cell
김 쎌
키치와 반복을 세포(cell)에 비유하며
자아의 증식과 존재의 밀도를 탐구하는 시각예술가.
'셀'이 아닌 쌍시옷 '쎌'을 고집함으로써
존재의 밀도를 더욱 진액처럼 응축한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생물학적 육체보다, 철저하게 통제되고 기획된 이미지가 오히려 더 진실한 자아이다."
SKIN PINK: 기획된 자아
1. 육체의 증발과 기획된 실존
우리가 맹신하는 ‘생물학적 실제’는 과연 한 존재의 본질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까? 암 투병 중 겪었던 생존의 불확실성과 3개월마다 반복된 수면마취의 경험은 작가에게 ‘실재’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의식이 부재한 그 틈새에서 작가는 묻는다.
“자각하지 못하는 육체가 진짜 나인가, 아니면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재구성된 내가 진짜 나인가?”
존재는 타인의 눈에 비치는 순간 비로소 생동한다. 정제되고 연출된 말투, SNS 프레임 속의 이미지처럼 의도적으로 구성된 모습들이 오늘날 사회 안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획득하며 작동하는 또 하나의 현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가짜라기보다, 지금 이 시대에 ‘진짜’가 기능하는 방식으로 확장된 실체에 가깝다.
설령 생물학적 육체가 소멸하더라도, 통제된 데이터와 의도가 남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디지털 불멸’이자 완전한 실존이다.
2. 세일러문의 변신
작가명 '김쎌'은 생물학적 단위인 'Cell'과 대중문화의 아이콘 '세일러문'의 코드를 중첩한다. 생명성과 소녀성, 유기성과 키치가 한 몸처럼 뒤섞인 이 이름은 신체적 실재와 이미지적 실재가 분리되지 않은 채 공존하는 작가의 존재 조건을 응축한 결과물이다. 김쎌의 작업에서 '쎌'은 하나의 형상이 아니라, 이미지와 자아가 증식하는 최소 단위로 기능한다.
김쎌은 이 '기획된 자아'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가벼운 하위문화의 물질을 가장 무거운 상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위계의 전복을 시도한다.
그의 대표작인 C.cell(Clay.cell) 시리즈는 손바닥으로 굴려 단 1초면 만들어지는 가벼운 '아이클레이'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이 하찮고 무심한 대상을 직관적으로 조형하고, 촬영과 디지털 보정을 거쳐 이미지를 통제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술사에서 가장 무거운 매체인 '유화'를 선택해, 캔버스 위에서 고통스러울 만큼 집요한 시간의 층을 쌓아 올린다.
아이클레이를 빚고, 촬영하고, 보정하고, 마침내 유화로 치환하는 이 과정은 세일러문의 변신처럼 평범한 덩어리를 압도적인 아우라의 존재로 격상시킨다.
3. 스킨핑크, 논핑크, 메타핑크
김쎌의 작업은 신체에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의 손과 피부, 신체 일부를 화면의 중심에 두고 자아의 존재를 신체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해왔다. 이 신체는 언제나 카메라를 매개로 제시되었다. 현장의 퍼포먼스라기보다, 촬영과 프레이밍, 연출과 보정을 거친 이미지가 작업의 결과로 남았다. 날것의 신체 그 자체보다, 신체를 매개로 연출되고 설정된 자아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과정에서 피부의 색은 자연스럽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과한 신체는 조명과 색온도, 후보정을 거치며 현실의 피부색과는 다른 색감으로 조형되었고, 그 결과 작업의 색감은 점차 보정된 피부색, 즉 핑크빛으로 수렴되었다. 이 핑크는 감정이나 취향에서 비롯된 선택이 아니다. 현실의 신체가 카메라와 보정을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수렴된 색의 상태다.
손과 피부에서 출발한 신체는 하나의 개체에 머무르지 않고 반복되고 증식하며 화면 전체를 점유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형태는 생물학적인 인상을 띠지만, 자연 그대로의 생물이라기보다는 필터링되고 재구성된 인공적 생물학에 가깝다.
이러한 연출과 필터링의 방식은 김쎌이 탐구해온 다중자아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하나의 자연 발생적인 자아를 전제로 작업하기보다, 자아를 여러 단위로 분해하고 각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이미지를 생산하도록 설정해왔다. 이 시스템을 '미세포 시스템'이라 명명하고, K.cell, E.cell, F.cell, J.cell, C.cell 등 서로 다른 자아 단위를 상정한 쎌 시리즈를 구성해왔다. 개별 작품들이 동일한 작가의 결과물처럼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김쎌의 회화는 한 명의 작가가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한 결과가 아니라, 여러 자아가 각자의 논리와 태도로 생산한 결과들이 하나의 구조 안에 공존하는 상태를 지향한다.
이러한 흐름은 이번 전시에서 세 가지 방식의 핑크로 구체화된다. 실제 피부와 이미지 피부의 경계에 놓인 스킨핑크(Skin-Pink), 핑크라는 규칙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논핑크(Non-Pink), 핑크의 의미를 객관화하는 메타핑크(Meta-Pink). 이미지로 존재하는 신체와 자아가 핑크의 유무와 혼재라는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전시는 세 가지 실재의 형태로 제시한다.
4. 인체의 색
오늘날 우리는 SNS 속 보정된 이미지로 서로를 인식한다. 이는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기록하는 동시대적 방식 위에서 형성된다. 아무리 제로에 가까운 꾸밈 없는 SNS를 지향한다 할지라도 본인만의 색이 나올 수 밖에 없고 일말의 의도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연출된 이미지와 각본화된 서사는 허구라기보다 현실이 작동하는 하나의 층위로 기능한다.
Skin Pink 회화는 인체 내부의 검붉은 에너지를 분홍빛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이는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미화가 아니라, 동시대 이미지 환경 속에서 실재가 가장 설득력 있게 인식되는 방식으로의 번역이다.
김쎌은 세포의 증식과 핑크의 변주를 통해, 연출된 방식으로만 진짜가 작동하는 세계 또한 하나의 현실로 인식되는 시대의 감각을 회화로 드러낸다.
김쎌의 회화는 자연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로 매개된 신체가 현실만큼이나 강력하게 작동하는 시대의 구조를 드러낸다.
검붉은 색만이 인체의 색인가? 색보정된 핑크는 가짜인가? 그 또한 인체의 색이다.
CELL (쎌):
이미지와 자아가 증식하는 최소 단위
CELLORMOON (쎌러문):
세포(Cell)라는 생물학적 기호와 세일러문(Sailor Moon)의 대중문화적 코드가 결합된 합성어. 생명성과 소녀성, 유기성과 키치가 한 몸처럼 뒤섞여 미묘하게 공존하는 이중적 어원이자, 김쎌의 작업 세계관 전체를 관통하는 명칭
CELL series (미세포 시스템):
하나의 구조 안에 여러 자아가 각자의 논리와 태도로 공존하며 증식하는 김쎌의 운영체제(OS)
K.cell (케이쎌 / Kim.cell):
신체의 단편과 메이킹 포토를 회화로 옮기며 자아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시발점. 신체는 재현의 대상이 아닌 자아 증명의 구조
E.cell (이쎌 / Eye.cell):
순정만화의 눈을 화면 전면에 확장한 올오버(All-over) 페인팅. 맹목적으로 반복되는 시선들을 통해 귀여움의 표면 아래 도사린 강박적 에너지와 긴장을 형성
F.cell (에프쎌 / Flower.cell):
꽃의 형상을 차용해 붉은 심장이 아닌 ‘분홍의 심장’을 가진 응집된 자아를 표현
C.cell (씨쎌 / Clay.cell):
쎌러문 시스템의 정점. 아이클레이를 빚고 촬영, 편집을 거쳐 고밀도의 유화로 치환. 조물주처럼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고, 가장 가벼운 매체를 가장 무거운 회화적 노동으로 박제한 개념적 수행의 결과물
J.cell (제이쎌/Joy.cell):
신체적 통증으로 인해 기존의 유화 작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지면서 시작된 시리즈. 완성도 중심의 긴장된 회화에서 벗어나, 그리는 과정 자체의 즐거움과 현재의 감각에 집중. 이전 시리즈가 규칙과 구조를 통해 자아를 증식시켰다면, J.cell은 규칙을 완화하고 한 템포 물러난 상태에서 자아를 바라봄
JC.cell (제이씨쎌 / Joy+Clay.cell):
C.cell과 J.cell의 합성회화. 완벽하게 통제된 C.cell의 거대한 중력 사이로 비집고 등장하는 유희적 일탈. 스티커를 붙이듯 떠오르는 영감을 직관적으로 배치하며, 묵직한 기획의 굴레 속에서 숨통을 틔우고 세계관에 경쾌한 변주와 리듬을 선사
쎌러문 구축 과정
2009
키치적이고 반복적인 감각을 대중문화 아이콘인 ‘세일러문’에 투영하며 ‘쎄일러문’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 시작
소녀성, 환상성, 변신의 서사를 통해 자아를 확장하는 첫 번째 시도가 이루어진 시기
2012
세포(cell)와 세일러문(Sailor Moon)의 개념을 결합해 ‘쎌러문(Cellormoon)’이라는 명칭으로 브랜딩을 구체화
동시에 김쎌(KimCell) 이라는 작가명을 사용하며, ‘셀’이 아닌 쌍시옷 ‘쎌’을 통해 존재의 밀도를 강조
쎌러문 창립을 기념하는 데뷔전, <미세포의 요정, Cellormoon>을 개최하며 세포와 소녀성, 이미지와 자아가 결합된 세계관의 출발을 공식화
2019
‘미(美)세포 시스템’이라 명명한 쎌 시리즈를 통해 자아를 세포 단위로 분화·증식시키는 구조를 체계화
각기 다른 자아 단위를 회화 데이터로 축적하며 쎌러문 세계관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
2025
C.cell 시리즈의 스킨핑크 회화를 중심으로 클레이로 빚어진 자아와 미화된 색채의 현실성을 다각도로 탐구
단 10초 만에 손으로 굴려 빚은, 가볍고 키치한 소재의 '아이클레이'를 촬영과 편집을 거쳐 가장 고전적인 유화 매체를 통해 정교하고 밀도 높은 '불멸의 실존'으로 격상시키며 위계의 전복을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