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N PINK
: 기획된 자아
Jun. 24 – Aug. 12, 2026
SPACE 55
김쎌의 작업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의식적으로 설정한 자아를 오랜 시간 반복하면, 그것은 결국 하나의 진짜 자아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2012년부터 다양한 CELL 시리즈를 통해 반복되고 확장되어 왔다. K.cell, E.cell, C.cell, J.cell은 각각 서로 다른 자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독립된 형식이며, 시간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작업 시스템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 속에서 '설정된 자아'는 '기획된 자아'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1. 세일러문의 변신
작가명 ‘김쎌’은 생물학적 단위인 ‘Cell’과 대중문화의 아이콘 ‘세일러문’의 코드를 중첩한다. 생명성과 소녀성, 유기성과 키치가 한 몸처럼 뒤섞인 이 이름은 신체적 실재와 이미지적 실재가 분리되지 않은 채 공존하는 작가의 존재 조건을 응축한 결과물이다. 김쎌의 작업에서 ‘쎌’은 하나의 형상이 아니라, 이미지와 자아가 증식하는 최소 단위로 기능한다.
김쎌은 이 ‘기획된 자아’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가벼운 하위문화의 물질을 가장 무거운 상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위계의 전복을 시도한다.
그의 대표작인 C.cell(Clay.cell) 시리즈는 손바닥으로 굴려 단 1초면 만들어지는 가벼운 ‘아이클레이’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이 작고 무심한 덩어리를 직관적으로 조형하고, 촬영과 디지털 보정을 거쳐 이미지를 통제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미술사에서 가장 무거운 매체인 ‘유화’를 선택해, 캔버스 위에 고통스러울 만큼 집요한 시간의 층을 쌓아 올린다.
아이클레이를 빚고, 촬영하고, 보정하고, 마침내 유화로 치환하는 이 과정은 세일러문의 변신처럼 평범한 덩어리를 압도적인 아우라를 지닌 존재로 격상시킨다.
2. 스킨핑크, 논핑크, 메타핑크
김쎌의 작업은 신체에서 출발한다. 초기 작업에서 작가는 자신의 손과 피부, 신체 일부를 화면의 중심에 두고 자아의 존재를 신체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해 왔다. 이 신체는 언제나 카메라를 매개로 제시되었다. 현장의 퍼포먼스라기보다 촬영과 프레이밍, 연출과 보정을 거친 이미지가 작업의 결과로 남았다. 날것의 신체 그 자체보다, 신체를 매개로 연출되고 설정된 자아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 과정에서 피부의 색은 자연스럽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과한 신체는 조명과 색온도, 후보정을 거치며 현실의 피부색과는 다른 색감으로 조형되었고, 그 결과 작업의 색감은 점차 보정된 피부색, 즉 핑크빛으로 수렴되었다. 이 핑크는 감정이나 취향에서 비롯된 선택이 아니다. 현실의 신체가 카메라와 보정을 통과하며 자연스럽게 수렴된 색의 상태다.
손과 피부에서 출발한 신체는 하나의 개체에 머무르지 않고 반복되고 증식하며 화면 전체를 점유한다. 이는 자연 그대로의 생물학이라기보다, 필터링과 재구성을 거쳐 형성된 인공적 생물학에 가깝다.
이러한 연출과 필터링의 방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획되고 작동하는 다중자아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작가는 하나의 자연 발생적인 자아를 전제로 작업하기보다, 자아를 여러 단위로 분해하고 각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이미지를 생산하도록 설정해 왔다. 이 시스템을 ‘미세포 시스템’이라 명명하고, K.cell, E.cell, F.cell, J.cell, C.cell 등 서로 다른 자아 단위를 상정한 쎌 시리즈를 구성해 왔다.
개별 시리즈가 하나의 동일한 스타일로 수렴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김쎌의 회화는 한 명의 작가가 다양한 스타일을 실험한 결과라기보다, 서로 다른 자아 단위가 각자의 논리와 태도로 생산한 결과들이 하나의 구조 안에 공존하는 상태를 지향한다.
이러한 흐름은 이번 전시에서 세 가지 방식의 핑크로 구체화된다. 실제 피부와 이미지 피부의 경계에 놓인 스킨핑크(Skin-Pink), 핑크라는 규칙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논핑크(Non-Pink), 핑크의 의미를 객관화하는 메타핑크(Meta-Pink). 이미지로 존재하는 신체와 자아가 핑크의 유무와 혼재라는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나타나는 양상을, 전시는 세 가지 실재의 형태로 제시한다.
3. 인체의 색
오늘날 우리는 SNS 속 보정된 이미지로 서로를 인식한다. 이는 카메라를 통해 세계를 바라보고 기록하는 동시대적 방식 위에서 형성된다. 아무리 꾸밈을 최소화한 SNS를 지향하더라도, 이미지를 선택하고 촬영해 게시하는 순간 그 안에는 개인의 시선과 일정한 의도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연출된 이미지와 각본화된 서사는 허구라기보다 현실이 작동하는 하나의 층위로 기능한다.
Skin Pink 회화는 인체 내부의 검붉은 에너지를 분홍빛으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 이는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미화가 아니라, 동시대 이미지 환경 속에서 실재가 가장 설득력 있게 인식되는 방식으로의 번역이다.
김쎌은 세포의 증식과 핑크의 변주를 통해, 연출된 방식으로만 진짜가 작동하는 세계 또한 하나의 현실로 인식되는 시대의 감각을 회화로 드러낸다.
김쎌의 회화는 자연을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로 매개된 신체가 현실만큼이나 강력하게 작동하는 시대의 구조를 드러낸다.
검붉은 색만이 인체의 색인가? 색 보정된 핑크는 가짜인가? 그 또한 인체의 색이다.














